[K라이프저니 | 이여름 기자] 1996년 몬도 무지카(Mondo Musica) 레이블에서 발매된 안나 본(Anna Bon, 1738-1769 이후)의 '플루트, 파곳과 쳄발로를 위한 6개의 소나타 작품 1번' 음반은 18세기 여성 작곡가 연구에 있어 중요한 이정표를 세운 역사적 녹음이다.
안나 본은 1738년 8월 11일 볼로냐에서 대본 작가이자 무대 디자이너인 지롤라모 본(Girolamo Bon)과 가수 로사 루비네티(Rosa Ruvinetti) 사이에서 태어났다. 불과 4살의 나이에 베네치아의 오스페달레 델라 피에타(Ospedale della Pieta)에 입학한 그녀는 당시 유럽 최고 수준의 음악 교육을 받았다. 이 음악학교는 30년 이상 안토니오 비발디가 바이올린과 비올라를 가르치며 소녀들을 위한 협주곡을 작곡했던 곳으로, 당대 유럽에서 손꼽히는 여성 음악 교육기관이었다.
피에타의 소녀 오케스트라는 국제적 명성을 누렸으며, 특히 당시 유럽에서는 '부적절하다'고 여겨졌던 첼로까지 여성들에게 가르친 진보적인 교육 방침으로 유명했다. 안나 본은 이곳에서 1754년까지 체계적인 음악 교육을 받으며 부모와 함께 순회 공연을 다니는 신동으로 주목받았다.
1756년, 18세의 안나 본은 바이로이트의 프리드리히 변경백 궁정에서 '실내악 비르투오사(chamber music virtuosa)'라는 직함을 얻으며 본격적인 작곡 활동을 시작했다. 작품 1번은 뉘른베르크에서 출판되었으며, 표지에는 '16세에 작곡'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어 그녀의 조숙한 재능을 증명한다.
이후 하프시코드 소나타 6곡(작품 2, 1757)을 작센-바이마르 공국의 에르네스티나 아우구스타 소피아 공주에게, 두 대의 플루트와 콘티누오를 위한 디베르티멘토 6곡(작품 3, 1759)을 바이에른 선제후 카를 테오도르에게 헌정하며 유럽 왕실의 인정을 받았다. 1762년에는 에스테르하지 궁정으로 옮겨 요제프 하이든의 앙상블에서 가수로 활동했으나, 1767년 이탈리아 가수와 결혼한 이후의 행적은 알려지지 않았다.
안나 본의 작품 1번 소나타들은 전형적인 3악장 구조를 따른다. 빠른 중간 악장이 느린 도입부와 느린 종결 악장으로 둘러싸인 형식은 이탈리아보다 독일 양식의 영향을 보여준다. 음악학자들은 그녀의 소나타가 요한 요아힘 콴츠(Johann Joachim Quantz)와 카를 필립 에마누엘 바흐(Carl Philipp Emanuel Bach)의 작품과 비교될 만한 수준이라고 평가한다.
특히 이 작품은 후기 바로크에서 고전주의 초기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양식을 보여주며, 갈란트 양식의 우아함과 감정 표현의 섬세함이 돋보인다. 18세기 여성 작곡가가 남긴 출판된 기악 작품이 극히 드물다는 점에서, 안나 본의 세 개의 작품집은 음악사적으로 귀중한 자료다.
이 음반에서 플루트를 연주한 클라우디오 페라리니(Claudio Ferrarini)는 이탈리아 바로크 음악 해석의 권위자로, 850,000장 이상의 음반 판매와 150장 이상의 디스코그래피를 자랑한다. 미국 레코드 가이드(American Record Guide)로부터 글로브(Globe) 상을 9회 수상한 그는 필립스, 유니버설 뮤직 그룹 등 주요 레이블과 작업했다.
음악 전문지 '무지카'는 페라리니의 연주에 대해 견고하고 풍부한 음색, 노래하듯 흘러가는 선율이 편안한 비르투오시티로 발전한다고 평가했다. 파곳의 안드레아 코르시(Andrea Corsi)와 쳄발로의 프란체스코 타시니(Francesco Tasini)와의 앙상블은 18세기 실내악 연주 관습에 충실하면서도 생동감 넘치는 해석을 들려준다.
1996년 5월 28일 녹음된 이 음반은 20비트 디지털 레코딩 기술을 사용해 악기의 섬세한 음색과 균형 잡힌 앙상블을 포착했다. 몬도 무지카의 '위대한 이탈리아 바로크(Il Grande Barocco Italiano)' 시리즈의 일환으로 제작된 이 음반은 독일 CDA GmbH에서 제조되었다.
안나 본은 18세기 이탈리아에서 활약한 드문 여성 작곡가 중 한 명이다. 당시 여성들은 대부분 연주자나 가수로 활동했으며, 작곡은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졌다. 그러나 베네치아는 피에타를 비롯한 음악 교육 기관들 덕분에 여성 음악가들이 비교적 활발히 활동할 수 있었던 도시였다.
안나 본의 작품들은 20세기 후반 들어서야 본격적으로 재발견되었다. 1985년 로렌스 대학의 캐슬린 아브로메이트(Kathleen Abromeit)의 연구를 시작으로, 2015년 미카엘라 크루사이(Michaela Krucsay)의 박사 논문이 그녀의 생년월일에 대한 새로운 증거를 제시하는 등 학술적 관심이 이어지고 있다.
이 음반은 오랫동안 망각되었던 여성 작곡가의 음악적 업적을 현대 청중에게 소개하고, 18세기 이탈리아 실내악의 다양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중요한 역사적 가치를 지닌다. 우아하고 정교한 선율, 탄탄한 구조, 그리고 감정의 섬세한 표현은 안나 본이 당대 최고 수준의 작곡가였음을 증명한다.
klifejourney2025@gmail.com
[저작권자ⓒ K라이프저니.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이 음반] 크리스티안 하인리히 링크(Christian Heinrich Rinck)의 종교음악 작품집(Sacred Works)](https://klifejourney.com/news/data/2025/12/06/p1065572018361958_941_h2.jpg)










